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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전 세계 대통령 탄핵 사건의 숨겨진 이야기: 민주주의의 마지막 방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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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대통령 탄핵 사건의 숨겨진 이야기: 민주주의의 마지막 방어선

전 세계적으로 대통령 탄핵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견제 장치이자 국가적 위기의 순간으로 기록됩니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헌법을 위반하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했을 때, 의회는 그들을 직위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합니다. 오늘은 세계 역사 속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대통령 탄핵 사례를 살펴보며, 그 배경과 결과를 알아보겠습니다.

1. 페드로 카스티요: 페루의 자기쿠데타와 탄핵

출처 - 네이버 이미지

2022년 12월 7일, 페루의 역사는 극적인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페루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 페드로 카스티요는 의회가 그를 탄핵하려는 시도에 맞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의회를 해산하려 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자기쿠데타' 시도였죠.

카스티요는 2021년 농촌 교사이자 노조 지도자로서 정치 엘리트들을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통령직은 곧 위태로워졌습니다. 탄핵을 피하기 위한 그의 극단적 조치는 군부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그날 저녁 의회는 압도적 다수로 그를 탄핵했습니다. 카스티요는 즉시 체포되었고, 부통령이었던 디나 볼루아르테가 대통령직을 이어받았습니다.

카스티요의 실각은 페루 남부 지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불러일으켜 최소 49명이 사망했습니다. 현재 그는 반란, 권력 남용, 공공 질서 교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검찰은 그에게 34년의 징역형을 구형했습니다.

2.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의 예산 스캔들과 대통령 파면

출처 - 포토뉴스

2016년 브라질은 정치적 혼란에 빠졌습니다. 5월 12일, 브라질 상원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정부 예산 제한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55-22 표차로 그녀를 정직시키는 탄핵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호세프에 대한 탄핵은 법적으로는 예산법 위반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브라질이 직면한 정치적 양극화, 만연한 부패, 심지어 군사 독재에 대한 향수까지 드러냈습니다. 그녀는 예산 적자를 은폐하기 위해 재정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결국 2016년 8월 31일, 상원의 표결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습니다.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자리에서 호세프는 재판이 불의이며 '쿠데타'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몰락은 불가피했습니다. 브라질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던 호세프의 파면은 브라질의 정치적 불안정을 심화시켰고, 부통령이었던 미셸 테메르가 대통령직을 승계했습니다.

3. 페르난도 루고: 파라과이의 '번개 탄핵'

출처 - 나무위키

파라과이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 정권 교체를 이룬 페르난도 루고 대통령은 2012년 6월 21일, 의회 하원에서 76-1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탄핵 발의안이 통과되었습니다. 불과 하루 뒤인 6월 22일, 상원은 39-4로 탄핵을 확정했습니다. 이 극도로 신속한 탄핵은 '번개 탄핵'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탄핵의 근거가 된 사건은 쿠루과티에서 발생한 경찰과 토지 없는 농민들 간의 유혈충돌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17명이 사망했고, 루고는 사태를 부적절하게 처리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이 탄핵이 정치적 동기로 이루어졌다고 봤습니다.

루고의 개혁 노력이 약화되면서 농촌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었고, 토지 점거와 퇴거, 그리고 토지 소유자와 농민들의 시위가 잇따랐습니다. 농촌 지역의 "보안 문제"와 루고의 개혁 계획에 불안을 느낀 의회는 행동에 나섰고, 그의 탄핵은 파라과이의 불평등한 토지 소유 패턴에 대한 도전을 엘리트들이 용납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루고 자신은 이를 "의회 쿠데타"라고 주장했으며, 이 급작스러운 정권 교체는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의 자리는 중도우파 PLRA 당 출신의 부통령 페데리코 프랑코가 차지했습니다.

4. 압두라만 와히드: 인도네시아의 권력 투쟁

출처 - 포토뉴스

2001년 7월 23일, 인도네시아의 구스 두르로도 알려진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하고 골카르당을 정지시키는 법령을 발표한 후 탄핵당했습니다. 이에 대응해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와 국민협의회(MPR)는 와히드를 해임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와히드와 의회 간의 갈등은 2001년 2월 1일 첫 메모랜덤 발행으로 시작되었고, 4월 30일 두 번째 메모랜덤이 이어졌습니다. 그는 MPR/DPR의 해산을 선언하고 1년 내 선거 실시, 골카르당 정지를 포함하는 법령을 발표했으나 지지를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 2001년 7월 23일, MPR은 전체 회의를 열어 와히드 대통령의 탄핵을 투표에 부쳤고, 591표라는 압도적 다수로 그를 해임하고 부통령이었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를 새 대통령으로 임명했습니다. 이는 인도네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으며, 메가와티는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인 수카르노의 딸로서 국가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5. 롤란다스 팍사스: 유럽 최초의 탄핵된 대통령

출처 - 나무위키

2004년 4월 6일, 리투아니아는 유럽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아낸 국가가 되었습니다. 롤란다스 팍사스 대통령은 금융 및 기타 중요한 지원의 대가로 유리 보리소프에게 불법적으로 리투아니아 시민권을 부여한 혐의로 탄핵당했습니다.

팍사스는 헌법 위반과 대통령 선서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국가 기밀 누설과 민영화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도 추가 혐의였습니다. 투표 전 25분간의 연설에서 팍사스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유럽 최초의 탄핵 절차가 리투아니아의 위상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의회는 그의 해임을 결정했습니다.

이 탄핵은 리투아니아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부패와 권력 남용에 대한 국민의 불관용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마치며

전 세계적으로 대통령 탄핵은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닌, 한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극대화된 결과물입니다. 이런 사례들은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며, 권력의 한계와 책임성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전달합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최고 지도자라도 법과 헌법 위에 설 수 없다는 원칙은 이런 극적인 역사적 순간들을 통해 계속해서 확인되고 있습니다.